대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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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겨울(아래). 대천교 확장(위)

사진 박성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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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전만 하더라도 대천마을의 양달과 음달 사이로 흘러내리는 대천 냇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개천에다 징검돌을 놓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1948년 대천마을 사람들이 정월대보름 대동회에서 의논하여 다리를 놓기로 결의하였다. 1948년 정월 15일 보름 대동회(大同會) 때에 의논하기를 오늘날까지 양·음지(陽陰地=양달·음달) 간을 건너 다니는 개천에다 징검돌 다리를 놓아 다니니 그 불편함이 극심하여 다리를 놓기로 결의하고, 이 방면에 기술이 있는 정우황(丁宇晃) 씨와 윤경만(尹敬滿) 씨 양인이 합심하여 철재심간(鐵材心杆)에다 콘크리트 교각으로 된 훌륭한 교량을 세웠다. 이른바 대천교(大川橋)이다.

낙동문화원 향토사 연구원, 『대천마을의 정담』, 2007

 

지금은 증축을 해가지고 많이 넓어졌어. 옛날에는 폭이 반 정도 밖에 안 됐어. 옛날에는 한여름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이 전부 다모여가지고 쉬는 자리였지. 여름에 아주 시원했거든. 거기 가면 마을 어른들이 전부 다 나와 있었어.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노닥거리기도 하면서 말이야.

최흥일, 47세, 용동골

 

주로 청년들은 여름에 시원하니까 밤에 나와가지고 놀았어. 송성근이하고 경식이는 간도 크게 다리 위 전깃줄에 장대를 달아가지고 야매로 전기를 끌어서 스피커도 켜고 전기기타도 치고 그리 놀았지. 그게 아마 60년도쯤 되었을 거야.

마을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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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징검다리를 놓아 양달마을과 음달마을의 대천냇물을 건넜다. 그러다가 좁은 나무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는데 비가 많이 오면 떠내려가곤 했다.

사진 박성태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