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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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91년 양력 4월 28일(음력 3월 10일) 월요일 맑음

우차를 몰고 장에 갔다 온다. 어머님 언양 석남사란 곳에 소풍 가신다. 그런데 버스가 전복되었다는 소문이 나서 온 동네가 뒤집히고 내가 최해봉군과 구포지서로 쫓아가서 각 처에 연락을 취하고 하였으나 헛소문이었고 구경차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안심하였다. 구포지서에서 처남을 만난다. 윤희수님 일기장에서 발췌, 1958년

마을사람들이 애기소라 부르는 곳은 원래 애기소 자리가 아니예요. 거기는 큰 바위로 보가 막혀버렸고, 지금 애기소라 부르는 곳은 한참 아래로 내려온 계곡 쪽에 있어요. 흥아농장 근처예요. 거기 흥아농장 다리 밑에는 큰 소나무가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여름날, 그 소나무 밑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닭도 삶고, 떡도해 오고, 국수도 삶고, 찌짐도 부치고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하루를 쉬고 내려가는 마을 행사가 있었어요. 우리가 어릴 때 어른들께 “어디 갑니까?” 하면 “해치 하러 간다. 가자.” 하셨어요. 옛날에는 마땅하게 갈 데가 없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나무 그늘 아래 모여 먹고 놀고 했는데 그걸 ‘마을 해치’라고 불렀어요. 80년대 이후에 피서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없어졌던 것같아요.

 최흥일, 47세, 용동골

 

요새 같으면 계모임 한가지지. 그때만 해도 모 심고, 보리타작 하고 나서 조금 한가할 적에 사람들이 일한다고 수고를 했고, 또 그때만 해도 보릿고개 넘길 때라 제대로 못 먹고 있다가 동네 해치를 하자(그게 사투리 말인데) 하면 쌀을 조금씩 거둬가지고 술을 담아놓고 돼지도 잡고, 닭 몇 마리 잡아가지고 하루 즐겁게 노는 기지. 6, 7월 이럴 때 물가로 갔지. 그런데 그 해치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와 그렇노 하면 그릇이며 음식, 술독 같은 걸 지게에 다 지고 또 올라가야 했거든.

 윤희수, 89세, 음달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