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명초등학교

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게 아니고 원래는 저 앞에 와석마을이라고 롯데마트 건너편 와석에서 태어났어요. 학교는 화명초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때는 화명동에 화명초등학교밖에 없었거든요. 우리 아들이랑 딸도 화명초등학교 다녔어요.

양정현, 51세, 경남아파트

 

옛날에는 화명초등학교 앞에 물골이 있었어. 조그마한 개울이었어. 그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물길로 만들어뒀었는데, 그주위에 돌을 쌓아뒀거든. 그 돌구멍 사이에 진짜 참게가 많았다니까. 갈대 같은 거에 미꾸라지를 잡아 미끼로 끼워서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하면 참게가 잡혔어. 지금은 참게탕을 어찌 하는지 몰라도 그 당시에 우리는 믹서기가 없었지. 참게를 절구에다가 넣고 두드려서 빻아. 거기다 호박이나 얄궂은 채소 뜯어 넣고 된장 한 숟가락 풀어 넣고, 그거만 하면 안 껄죽하니까 밀가루나 전분가루나 약간 풀어가지고 껄쭉하게 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그게 반찬으로 기가 찼다. 진짜 맛있었다.

김대근, 59세, 용동골

 

학교에 실습답이라고 지금 경남아파트 자리에 약 700평가량의 학교 전답이 있었어. 그 당시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한다든가 타시도로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어요. 결국은 농사를 짓게 되는데 농사짓는 방법을 실습답에서 아예 배운 거지. 보통 한 3학년 정도 되면 직접 모심기하고 피도 뽑고 추수도 하고 그랬어요. 벼는 수확하면 팔아서 학교에 쓰고 또 사택에 계신 선생님들 양식으로도 쓰기도 했어요.

멀리 사시는 분들이 교통편이 없으니 출퇴근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선생님들은 사택에 주로 사셨어요. 지금 화명초등학교 뒷건물 뒤쪽으로 사택이 쭈욱 있었어요. 마을에 하숙을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정인철. 53세, 도시그린아파트

 

47년 전에는 율리, 화전, 동원, 공창 마을 애들은 학교 정문에서 우회전해서 논길로 쭉 가는 길이 있어. 양쪽이 다 논이고 논길로 150미터쯤 가면 화명초등학교 모교 동문들이 마련한 옛날에 농사짓는 땅이 있어. 학교 전답이었는데 그게 제법 많았어. 우리가 4~5학년 때는 거기다 모를 심고 나락을 베고 수확을 해가지고 도서도 사고 학교에 필요한 것도 사고 했어.

김대근, 59세, 용동골